맘스커리어 - [역사를 바꾼 여성들]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 맑음통영17.7℃
  • 구름많음동두천15.7℃
  • 맑음인천17.3℃
  • 구름조금서귀포20.3℃
  • 맑음고산19.3℃
  • 맑음남원16.8℃
  • 맑음장수15.1℃
  • 맑음대전17.0℃
  • 맑음서청주15.1℃
  • 맑음광양시17.4℃
  • 맑음순천16.7℃
  • 맑음안동14.6℃
  • 맑음속초16.3℃
  • 맑음군산16.4℃
  • 맑음이천14.6℃
  • 맑음거제17.0℃
  • 맑음함양군16.0℃
  • 맑음정선군16.2℃
  • 맑음태백12.9℃
  • 맑음밀양17.5℃
  • 맑음산청15.6℃
  • 구름조금울릉도15.2℃
  • 맑음고창18.0℃
  • 맑음순창군16.0℃
  • 맑음해남17.7℃
  • 맑음포항16.3℃
  • 맑음의령군15.7℃
  • 구름조금북부산18.6℃
  • 맑음수원15.7℃
  • 맑음영천15.4℃
  • 맑음흑산도16.6℃
  • 맑음김해시18.7℃
  • 맑음춘천15.2℃
  • 맑음양평13.9℃
  • 맑음홍성16.6℃
  • 맑음고흥17.8℃
  • 맑음영월15.4℃
  • 맑음인제14.5℃
  • 맑음장흥18.4℃
  • 맑음북창원17.7℃
  • 맑음고창군16.9℃
  • 맑음거창15.8℃
  • 맑음경주시16.3℃
  • 맑음진도군16.8℃
  • 맑음대구15.6℃
  • 맑음부여16.4℃
  • 맑음임실16.0℃
  • 맑음북강릉15.9℃
  • 맑음진주16.0℃
  • 구름조금울산15.9℃
  • 맑음전주18.2℃
  • 구름많음강화15.3℃
  • 맑음광주16.8℃
  • 맑음보성군17.3℃
  • 구름조금백령도15.6℃
  • 맑음양산시18.1℃
  • 맑음원주15.0℃
  • 맑음강진군17.7℃
  • 맑음북춘천13.6℃
  • 맑음영덕15.1℃
  • 맑음추풍령13.8℃
  • 맑음홍천14.5℃
  • 맑음세종16.0℃
  • 맑음의성15.6℃
  • 맑음완도17.7℃
  • 맑음영주14.2℃
  • 맑음동해15.5℃
  • 구름많음철원15.0℃
  • 맑음강릉17.4℃
  • 맑음청주16.2℃
  • 맑음창원16.7℃
  • 맑음금산16.1℃
  • 맑음서산16.9℃
  • 맑음청송군15.5℃
  • 맑음목포17.3℃
  • 맑음부안17.3℃
  • 맑음대관령11.5℃
  • 맑음천안15.2℃
  • 맑음보령17.8℃
  • 맑음울진15.6℃
  • 맑음여수15.0℃
  • 맑음봉화14.5℃
  • 구름많음파주14.6℃
  • 맑음부산19.3℃
  • 맑음구미15.2℃
  • 맑음보은14.6℃
  • 구름조금서울16.4℃
  • 맑음문경13.7℃
  • 맑음영광군17.1℃
  • 맑음정읍17.5℃
  • 맑음상주14.2℃
  • 맑음합천16.2℃
  • 구름많음성산18.5℃
  • 맑음제주19.1℃
  • 맑음충주15.8℃
  • 맑음남해15.7℃
  • 맑음제천13.6℃

[역사를 바꾼 여성들]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최영하 기자 / 기사승인 : 2023-01-05 09:40:14
  • -
  • +
  • 인쇄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만들고자 목숨을 걸었던 숨은 열사
[역사를 바꾼 여성들]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맘스커리어=최영하 기자] 국내외를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중대한 순간에 존재감을 보였던 여성을 조명합니다. 시대의 억압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유의미한 결과물을 내놨거나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던 사례들을 소개하고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내용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한국인이 한국 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사진=독립기념관]

일제강점기는 민족 전체가 핍박을 받던 시기였고, 교육과 참정권 등의 민주주의 측면에서 여성의 권리는 사실상 없는 것에 가까웠다. 따라서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운동 과정에서도 여성의 공간은 더욱 좁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장투쟁으로 대표되는 남성 주도의 독립운동사 안에서도 여성만이 가진 위력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독립에 대한 갈망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배움에의 의지로 똘똘 뭉쳤던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김마리아는 1891년 6월 18일 황해도 서대면 송천동에서 김윤방·김몽은 부부 사이의 3자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부친은 그의 이름을 마리아로 지어줬고, 자연스레 아버지가 설립한 소래보통학교에 언니들과 다니며 개신교 정신과 항일 정신에 입각한 평등과 신학문을 학습했다. 

 

보통학교를 4년 만에 졸업한 김마리아는 대학 공부를 권유한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1905년 서울로 상경해 숙부 김필순의 집에 머물면서 이화학당과 연동여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광주 수피아여학교와 모교인 정신여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 일본 유학을 떠났다.

 

김마리아가 민족주의적 독립운동에 눈을 뜬 것이 바로 이때 일본에 머물면서다. 동경여자유학생 친목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점차 운신의 폭을 넓히던 그는 1919년 도쿄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2·8 독립 선언이 일어나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이어 곧바로 귀국해 전국적으로 벌어진 3·1 운동 당시 황해도 지역의 운동에 투신했다 체포·구금되고 만다. 당시 귀국하면서 2·8 독립 선언문을 기모노 안의 허리띠에 숨겨 들여온 것이 발각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3·1 운동의 전국적 확산을 위해 여성계를 지도하는 활동을 전개했고 그의 활동은 서울지역 여학교들이 조직적으로 3·1운동에 참가하는 데 기여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5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고 풀려난 김마리아는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하고 회장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하는 일에 힘을 쏟던 중 애국부인회 관계자들과 다시 붙잡혔다. 당시 일제 경찰로부터 심문을 받으면서 했던 “한국인이 한국 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명언은 그의 자주독립 의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때 받은 심한 고문으로 인해 후유증이 계속되면서 그는 병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이후 1920년 미국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중국 상하이로 탈출했다. 일제의 감시망을 뚫은 망명 성공은 단순한 개인적 차원의 일이 아니라, 결단력 있는 여성항일운동가의 용기 있는 결행이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한국인을 위해 건재함을 국내외에 각인시킬 수 있었다.

 

김마리아는 상하이에서 임시정부의 황해도 대의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현재 난징대학의 전신인 진링대학을 거쳐 미국 파크 대학교와 시카고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뉴욕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해외에 머무는 동안 김마리아는 주로 선진적인 서구 교육에 전념하면서 상해와 만주지역의 동포들에게 단결과 실력양성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이는 독립운동의 새로운 활로 개척에 대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그는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노력에 평생을 투신했다.

 

1935년에 귀국한 김마리아는 여생을 기독교전도사업과 신학 발전에 매진했다. 1938년을 전후해 한국 개신교 주요 교파들이 일제의 강요에 굴복하고 변절하던 시기에도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그는 오래전 투옥 당시 심한 고문으로 얻은 병이 재발하면서 1944년 3월 13일 평양기독병원에서 숨을 거뒀고, 시신은 유언대로 화장해 대동강에 뿌려졌다.

 

[저작권자ⓒ 맘스커리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ISSUE

뉴스댓글 >

맘스커리어 후원안내

맘스커리어는 경력단절 없는 세상, 저출생 극복, 워라밸을 사명으로 이 땅의 '엄마'라는 이름이 최고의 스펙이 되는 세상, '엄마'라는 경력이 우대받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예비사회적기업 언론사입니다. 여러분들의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우리은행 : 1005-004-582659

주식회사 맘스커리어

PHOTO NEWS